카테고리 없음

My love was like a rain

Rybs 2019. 11. 3. 06:34

-

그러니까 제 말은, 분명 이 우주에도 변두리라는 게 존재하겠지요. 끝없이 팽창하는 공간 그 어딘가에 말예요, 우리 삶을 위탁하는 시간은 그저 찰나에 불과하여 어쩌면 가장자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 잠시 머물 수도 있을 것도 같았어요.

 

이런, 벽에 기대세요, 피가 멈춘 줄 알았는데. 당신 상처가 다시 터진 모양이에요. 기대세요. 돌아갈 곳은 없어요, 크레닉. 기억하시죠, 우리는 제국에게 배신당한 도주자들이에요. 스카리프는 사라졌어요. 플래닛 킬러가 거길 날려버렸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말했던 걸 기억하시죠? 이제 제가 상처를 살필 수 있게 해주세요. 네, 그렇게, 버둥대지 마시고, 일단 옷을 좀 자를게요. 총상이라고요, 네,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럼요, 갤런 어소의 딸이 당신을 쐈다고. 죽은 줄만 알았는데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그래요, 그렇지, 갤런 어소에 대해 말해주세요. 제가 상처를 씻어내고 봉합하는 동안. 그 전에 약 하나만 삼키면 돼요, 크레닉. 이것 한 알만. 이두에서 당신이 그에게 해준 것들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그래요, 손에서 힘을 풀어요. 그냥 지나가게 해요,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버터를 바를 나이프를 뺏어갈지도 몰라요. 아니, 아니에요, 내가 잘못 말했어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없어요, 내가요, 크레닉. 내가 뺏는다고요.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었다가...

 

이두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칼을 놔요.


무딘 칼에 이지러진 자상에서는 피가 느리게 떨어졌다. 톱니처럼 너덜너덜하게 일어난 살점을 닦아내고 촘촘하게 꿰매는 일련의 과정 안에서 그는 어째서 셔틀이 움직일 때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지, 왜 밖을 볼 수 있는 창이 없는지, 나가는 문은 잠겨 있는지, 조종사를 만나볼 수 없는지 등의 질문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부드럽지만 가차 없는 손길이 턱을 위아래로 붙잡고 입을 억지로 벌렸다. 벌어진 입 안에 작고 씁쓸한 덩어리가 들어왔을 때 그는 발버둥 쳤다. 당신을 위한 거예요, 올슨. 약이 녹아 흐를 틈은 없었다. 그의 턱을 다물리고 코를 잡아 쥐며 남자는 말했다. 숨이 막힐 즈음에 목울대가 꿀럭이며 약을 넘겼다. 피로 범벅이 된 그의 뺨을 남자는 물수건으로 오래오래 닦았다. 당신은 실상 모든 게 당신의 망상이고, 당신이 하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죠, 올슨? 그렇게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크레닉은 고개를 느리게 가로저었다. 그들이 날 배신했어. 제 어깨를 움켜쥐고 둥글게 어깨를 굽히며 그는 물었다. 몇 십, 몇 백번이고 반복되는 질문. 셔틀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거지, 제국이 보지 못하는 곳은 없어. 그 깃발이 휘날리지 않는 곳은 없다고. 남자는 물수건의 그나마 하얀 부분이 겉으로 오도록 재차 접고는 바닥을 닦았다. 흰 바닥에 얼룩진 핏방울들을 닦으며 남자는 대답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분명 이 우주에도 변두리라는 게 존재할거란 거예요, 크레닉. 배반당한 자들을 위한 곳이요.

 

그러면 너는 누구지. 이 역시 앞의 질문들만큼 수없이 반복된 질문이었고 남자는 늘 같은 답을 내놓았다. 질리는 기색 하나 없이. 당신은 가벼웠어요. 이미 많은 피를 흘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불탄 다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 있던 당신을 들쳐 메고 뛰었어요. 정말, 정말로 간발의 차로 우리는 빠져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국장님. 당신 직속이란 건 그런 거였지요, 그렇죠? 그렇게 두루뭉술한 대답은 그에게 늘 남자를 기억해내게 만들곤 했다. 당신의 그 온전하지 못한 정신 안에서 나를 기억해내는, 아니,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빚어내는 것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나만이 아는 것이어서. 이 일은 언제나처럼 우리 사이의 비밀로 해요, 크레닉. 셔틀이 목적지에 도착하거든 그때는. 그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크레닉. 알겠지요. 버터 칼을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카일은 그를 안아들어 침대에 눕혔다. 바다가 있는 행성으로 가게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