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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Je te laisserai des mots

Rybs 2019. 11. 6. 01:06

 

잠을 잘 수 없는 밤이 찾아오면 나는 당신을 보러 와야만 해요. 내가 잘 해냈나요, 피터?


이상하게도 불행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지켜야 할 무언가를 숨기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요, 베일리쉬 경. 결국 잃게 될 것을 어느 순간엔 깨닫게 되지만, 어떻게든 놓을 수가 없는 무언가들. 계속되는 고통, 희생, 너무나 큰 상실. 마지막까지 그것 하나를 지키려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우리는 때로 그들에게 애원하지. 이것만은 남겨주세요, 제발, 제발. 그리고 가끔은 그것들을 지키려 외려 멀리해요. 적들에게 마치 그 소중한 것들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믿게 하려고, 그렇게 믿게 만들어야만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한 행동들이 그것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되리라 믿으며,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으려고 함부로 굴리는 거에요. 당신이 나에게 한 짓들이 그런 거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마치 그런 이유에서 나를 구덩이 속에 밀어넣고 위를 막은 것이었다면. 그렇게 믿고 싶을 정도로  당신 외에 당장 기댈 곳이라곤 하나도 없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아니었지. 당신은 그저 가지지 못한 것들 중 가장 아름답고 아쉬웠던 것의 허상을 내게 씌우고는 스스로를 위해 나아갔어. 내 입술을 훔치며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었을까? 나를 손아귀에 쥐려던 그 모든 말들이 가지지 못한 이지러진 허상에 좌우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을까, 당신은 분명 나를 사랑했어요. 그녀를 닮은 젊은 육체와 당신을 믿을만큼 순진하고, 당신말고 믿을 사람도 없는 부스러진 마음을 가진 나를. 오래전에 일그러지고 뒤틀린 욕망 속에서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을 착각으로 묻으며. 결국 우리가 지키려던 건 무엇이었을지 나는 자주 궁금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지킴’이란 게 뭐였을까, 내가 죽지 않고 숨만 붙어있다면 괜찮았나? 당신은 원하는 모양으로 나를 달구고 두드려 벼리고 종국엔 가두고 아끼고 사랑하고 싶었던 걸까?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 속에서 우리를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죽게 하는 건 뭐였을까요? 당신 말 중 진실이 하나쯤은 있었을까? 혼돈은 정말로 우리에게 구덩이가 아니고 사다리였나요? 나는 위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나? 당신을 꼭대기에서 떨어뜨린 게 맞나? 환희와 고통은 너무도 닮아 있었어. 피가 번져가는 돌바닥에서 경련하던 육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지, 그렇죠? 당신 눈을 보면 나는 거짓을 읽어낼 수 있을 텐데 이 밤은 너무나 어두워서 커튼을 걷는대도 그 얼굴은 보일 리가 없는데도, 나는 그 베일을 걷을 수가 없어요.  북부의 밤은 달조차 산 뒤에서 바람을 피하는 밤. 이 길고 추운 밤에 우리는 풀 응어리도 할 이야기도 너무나 많아요. 적어도 당신이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주 많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베일리쉬 경.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모를 이야기가.

 


 

별채에서 영주님은 흉내지빠귀를 한마리 키우신다지, 바다 건너에서 들여온 것들 중 추위에 겨우 살아남은 연약한 것. 온 몸이 새까맣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꼭 검은 비로드를 입힌 듯 한데 이상하게도 꽁지깃은 은빛으로 빛난다고 하던. 그 지빠귀를 퍽 아끼신다는 소문이 있다네, 그 지빠귀가 인간 말도 한다니 신기하기도 하지. 들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보게 두질 않으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