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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上)

Rybs 2019. 11. 14. 23:25

 

 

-돈이 목적이에요?

-뭐? 아냐.


그러니까, 사실 유서프는 분명 오늘 하루를 아주 상쾌하게 시작했다. 그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섰고, 평소같으면 지렁이마냥 기어다닐 전철이 무슨 일인지 정시에 제대로 도착했고, 며칠 전에 새로 산 신발은 그에게 매우 잘 어울렸을 뿐 아니라 발볼이 넓어 아주 편했으며, 사무실-겸 창고-뭐라고 부르던 그가 일하러 가는 중에 들린 스타벅스에선 무슨 일로 가게가 한산한지 커피 주문이 밀리지 않아 금방 휘핑이 어마무지하게 올라간 헤이즐넛 라떼를 받아 마실 수도 있었다. 모든 게 착착 이루어지는군. 굿 유서프. 아주 굿이야. 스스로를 칭찬하며 그는 매우 행복하게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다른 팀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코브였다. 아, 코브. 유서프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그의 생각엔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나-미묘하게 음침한 코브에게도 밝은 아침 인사를 전하기로 마음먹고 해맑게 그를 불렀다. 일반 사람들 같으면 이럴 때 그래, 좋은 아침. 하고 대답을 하겠지. 물론 코브라면 퀭한 눈으로 고개나 까닥하고 말겠지만 알 바야. 내가 기분이 좋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유서프는 방글방글 웃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일반 사람들 같지도, 평소의 코브 같지도, 아니, 어떤 사람도 저걸 아침 인사로 하진 않을거야. 라고 생각될 말이었다. 나 사이토한테 청혼할거야. 유서프는 라떼를 홀짝이다 사레가 들렸다. 잔 속의 달콤하고 따뜻한 액체가 5초간 제 새 구두 위로 뚝뚝 떨어지고서야 유서프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있었다. 예....사이토 씨랑? 미쳤어요?

 


 

역시 그 갑부 돈이 목적인건지. 유서프의 눈은 불안스레 떨렸다. 그런데 왜 아서랑 임스는 안 와요? 아리아드네는? 이 상황에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은데. 속마음을 꾹꾹 누르며 유서프는 코브를 쳐다보았다. 아리아드네는 졸업 논문 쓰는 중. 아서는 보나마나 아리아드네 논문 쓰는 거 도와준답시고 휴가내고 걔 침대에서 담배 피우는 중, 임스는 그냥 지각일거야. 코브의 대답은 일목요연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 대답은 유서프를 지옥으로 밀어넣는 삼지창과 같았다. 그나저나 내가 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대. 코브는 눈가를 문지르며 대꾸했다. 모르는 사람이 팀원 중에 있긴 해? 유서프는 눈치를 보며 말꼬리를 늘렸다. 아아니이이요오오....코브의 미간이 구깃구깃해지는 걸 보며 유서프는 이미 식은 라떼를 호록거렸다. 일 끝나고도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주고, 틈만 나면 얼굴 비추고, 툭하면 지 전용기에 당신 태워서 오만 데를 쏘다니는데 누가 모르냐고. 정장까지 맞춰서 입혀주더만. 유서프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말을 삼키는 동안 코브는 유서프가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첫 섹스가 어땠고, 자기한테 뭘 해줬고, 기념일이 어쩌고, 저쩌고, 별장에서 보낸 휴일과 돔 페리뇽과 꼬냑과 캐비어와 오페라 공연과 비행기 짐칸, 공공장소, 회사 탕비실, 온실, 병원 해변의 격렬한...그쯤엔 유서프가 코브의 입에서 나오는 과한 정보값들을 막으려 필사적으로 말을 잘라먹었다. 오케이. 돈만 보고 그러는 건 아니라고, 알겠어요. 서로 너무 너무 사랑한다고. 코브는 마치 사랑이란 단어를 처음 듣는 인간마냥 예민하게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유서프의 주변을 배회하며 걸어다니다 한참 뒤에나 대답했다.

 

그래.

 

결혼해서 애도 둘이나 있던 사람이 뭐 저래? 이 말도 고이고이 삼키며 유서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어쩌려고요? 나한텐 뭘 바라는 거에요. 난 약제사지 파티 플레너도 아니구만. 도와달란 거지. 아서는 끼어들기 싫대. 실패하면 그 사람한테  이 회사 자본 지킬 사람 한명쯤은 밉보이지 않고 남아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임스는 안 왔잖아. 이 사람한테 친구가 없다는 걸 까먹지 말아야지. 그 이유도. 밉보여도 되는 사람을 골라 도움을 청하는 거 봐, 이 약은 흰둥이 같으니. 유서프는 혀를 깨물며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