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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바다

Rybs 2020. 3. 5. 16:03

 

그러니 뉴튼이 그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단 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도 그런 거짓말이 없게 너무도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고 얕은 물결 휩쓸려 지나가면 다음 거짓말이 다시 밀려들어오기 전에 젖은 진실을 드러내곤 하는 그런 거짓말이었다는 것인데 허먼에게는 이도저도 세상의 종말을 막는 것에 비한다면 뭐든 그리 중요한 일이 전혀 아니었기에 한동안은 그것이 얼마나 얄팍하든 그는 정말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는 늘상 애정이며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대도 마치 아무렇지 않은 양 그 자신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은 농담 취급하는 뉴튼 때문이었기도, 잠시 멈출 기미조차 없이 야속하게 끝을 향해 나아가는 전쟁 시계의 바늘 때문이었기도, 비단 그렇게 얄팍한 뉴튼에게 우월감이든 동정심이든 동질감이든. 그런 것을 느낄 만큼 제가 더 나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테지만 그는 정말, 정말로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무뎌질 줄을 허먼은 잘만 알고 있었다. 초라한 랩에서 나와야만 하는 날들에 허먼은 더는 충분하지 않은 흰 꽃을 한 송이 정도는 괜찮단 식으로, 사치스레 꽃잎 하나하나를 뜯다 뉴튼에게 물었다. 나는 바다에서 죽진 않겠지? 뉴튼 가이즐러는 그때 어떤 표정을-그러니까 엉성하게 밀어 어색해 보이던 턱은 당겨져 있었던가? 그의 입꼬리는? 녹색과 갈색이 얽혀 죽어가는 것만 같았던 눈동자는 허먼 그를 보고 있기는 했던가? 허먼은 꽃잎이 다 뜯겨나가 볼품없이 구겨진 줄기만을 손 안에 남겨 잡고 있었다. 예거의 잔해는 파일럿들의 잔해에 비하면 차라리 어떤 아름다움이 보이기라도 하리란 생각을 무시하려고. 파도에 실려오던 그들의 시체는 각양각색으로 어떤 것은 산 것마냥 어떤 것은 형체도 찾아보기 힘든 그런 꼴이었는데 으레 뉴튼은 그런 조각들을 모아 담아 치르는 급한 장례식때마다 바닥에 그어진 선을 넘고는 허먼에게 그렇게 말했다. 너는 죽어도 바다에서 죽지는 않겠지. 그러니 죽음 생각을 하지 않은 건 거짓말이고 실상 둘은 서로의 죽음이 정말로 막연하기만 했을 뿐이다.

 


우리는 뭘 한걸까?

 

종전 후 둘은 여러가지를 잊었다. 잊으려고 발버둥을 친 것이 더 맞을 것으로, 허먼은 그저 묻어두고 싶던 마음들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우리는 뭘 한걸까? 우리는 세상을 구했어, 뉴튼. 우리가 구했지. 뉴튼은 허먼의 마르고 보드라운 뺨에 가볍게 코 끝을 부볐다. 아냐, 우리는 그때 살아남느라 정신이 없었을걸. 뉴튼답지 않은 말이란 생각을 하며 허먼은 제 뺨만큼이나 메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세계를 여러 번 잃었어. 그때마다 우리는 무뎌지고, 무뎌졌던 거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각각의 개인들이 모두 하나의 세계였을 때. 전쟁은 그 어떤 얼굴도 가지지 않고 그들의 문 밖에 그저 도사리고 있었다. 가라앉혀야 하는 것들을 응당 가라앉히는 데에도 큰 노력이 필요함을 허먼은 알았다. 뉴튼, 우리는 세계를 구했어, 그거 외에는 정말 한 게 없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아남기에 바빴으니까. 우리는 죽음이 밀려오는대로 그에 휩쓸리지 않으려 서로를, 우리는 사실 우릴 구했어. 뉴튼은 허먼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허먼은 어떤 표정으로-허먼은 그와 너무나 가까웠고, 뉴튼은 표정을 보는 대신 허먼의 숨소리를 들었다. 작은 새의 날갯짓같기도 한 그런 숨소리를-하고 있었을 지 얼추 짐작만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또는 이해하지 않으려 한 걸지도 모르는 뉴튼 역시도 그를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