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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Forever)Stop The World I Wanna Get Off With You

Rybs 2020. 3. 11. 01:42

 

 

께라는 말은 둘의 이름 앞, 뒤, 그 어디든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지도, 서로를 식사시간에 초대하거나 같이 영화를 보러가지도 않을 것이고, 서로의 음악 취향에 대해 토론하거나 못생긴 러그를 집에 들이냐 마느냐에 대해 다투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 둘은 같은 침대에 누워 서로를 마주 볼 일도 없을 것을, 평범한 사람들처럼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할 일도 아마, 아마도 언제나처럼 그런 일은 둘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헨리 모건은 그런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턴 그가 두렵지 않았다. 둘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뿐이란 사실은 헨리를 외려 안심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많아, 헨리. 아담은 그런 헨리에게 귀띔해주지는 않았다. 그들이 공유하는 그 한가지가 끝을 알 수 없는 긴 삶이기에 종래엔 그가 사랑하는 것들은 다 죽고 남을 것은 소름끼치고 인간같지도 않은 자신이어서 결국엔 그 어떤 사실을 갖다 붙이든 그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 순 없을거란, 그런 말은 절대 귀띔해주지 않았다. 당신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친구 사이엔 그런 말은 아끼는 법이지. 적당한 시기가 온다면-피할 수 없는, 그런 때에 당신의 생은 지긋지긋하게 길고 외로워 누구든 붙들고 싶을 거요. 나 같은 사람이라도, 외려 나 같은 사람을.

 


목. 그는 첫 말을 그렇게 떼었다. 아담이 앉아 있는 의자는 값이 꽤 나갈 정교한 세공의 목제 의자였고,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앉은 크기의 의자에 그는 앉아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목을 긋는 감각을 좋아하는 편이야. 목제 의자의 등받이는 고리버들로 짜여 유연하게 그의 등을 받쳐 주었다. 의자가 전체적으로 윤기가 흐르게 유지된 것은 백분 에이브의 노력 때문일 것이었다. 아담의 얇고 마른 입술 사이로 연기가 새어나왔다. 불똥이 떨어져 그 아름다운 의자를 망치면 어쩌려고. 헨리는 그의 손에서 시가를 낚아챘다. 시가를 버릴 건 아니지, 헨리? 아깝지 않겠어. 근래에 구한 것들 중 가장 질 좋은 시가인데 말야. 아담의 입술이 닿았던 부분에 헨리의 입술도 닿았다 떨어졌다. 좋아하는 걸 물었을 때 기대할 만한 대답은 아닌데. 아담은 헨리의 입에서 번지는 연기를 보며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그렇지, 하지만 자네는 에이브가 내 집을 뒤지는 동안 나를 여기 붙잡아두려고 그런 질문을 하는 거니 통상적인 대답은 하지 않을 거야. 헨리 모건은 기어코 그 비싼 시가의 재를 에이브가 끔찍히 아끼던 터키산 홀바인 콜렉션 카페트에 떨구고 말았다.

 

이런, 에이브가 화내겠네. 어쨌든 자네 잘못이야. 아담은 태평하게 말했다.  

 


And I don't wanna lie but I don't wanna tell you the truth.

 

그가 사랑했던 모두가 또 다시 죽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러 떠나야 했던 그 날 헨리 모건은 한 남자를 죽였다. 그의 목을 가볍게, 부드럽게 그었다.


날 영원히 이렇게 둘 만큼 그렇게, 모질지 못할 거란 건 알았지. 이전에 말하지 않은 이야기는 없었던 것처럼 아담은 하얀 침대보를 적당히 덮은 채 젤로를 먹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말해줄 생각은 없나? 헨리는 할수만 있다면 그를 죽이고 싶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죽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를 죽였다. 다시 살아난 그를 병실 침대에 뉘였다. 내 말대로지, 목을 긋는 감각은 즐거워. 여린 살은 버터 가르듯 날에 들러붙으니까. 어쨌든 멀쩡한 목을 손 끝으로 더듬으며 아담은 그때 귀띔해주지 않았던 말을 입에 올렸다. 우리에겐 시간이 참 많아, 헨리. 사랑하는 모든 것이 다 죽었나? 헨리는 손톱 끝에 피가 말라붙은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아담은 정적 속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위험한 나에게서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밖에 안 남았나 본데. 헨리는 여전히 혀가 돌덩이라도 된 것마냥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으나 아담은 젤로를 다 먹은 참이었다. 우리는 영혼의 동반자요, 헨리. 우리 영혼이 겪는 일들은 오직 서로만이 이해할 거란 말입니다. 식용 색소 때문인지 눈에 띄게 붉고 푸른 색이 물든 혀가 그렇게 말했다. 아담은 기쁜 얼굴로 웃었다. 그러니 당신이 외로움에 미치기 전에 인정해요. 내가 그리웠겠죠. 헨리의 머리는 시트 위에 느리게 놓였다. 갈색 고수머리가 흰 시트에 닿았다. 제발 내 눈앞에서 꺼져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것이 헨리 모건이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오랜 세월 지켜온 양심이 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올린 방어 체제란 그렇게 알량하니 약한 말 뿐이었다. 그렇게 연약해진, 아담의 손 밑에 닿은 자기 자신을 빼고 모두 잃어버린 남자의 낯은 축축했기 때문에 아담은 새 것마냥 단단한 다리로 일어나 그 병실을 떠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부활이었다. 그는 원하던 것을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