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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C Breaking Bad) pimento

Rybs 2020. 4. 24. 05:09

 

샌드위치는 가장자리를 잘라낸 아나다마 빵 두 쪽 사이에 가공된 피멘토 치즈와 마요네즈, 으깬 계란과 피클이 뒤섞인 필링을 채워넣은 것이었다. 마이크는 감찰에는 이골이 난 인간처럼 메마르고 짠 그 샌드위치를 베어 물곤 했다는 것을 제시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러니 제시는 더이상 제시가 아니게 된 후로도 그 때 생각을 했던 것이다. 크리스털 메스와 죄책감과 일방적인 상실과 물담배 연기와 게거품을 물고 죽은 ... 그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드는 랩에 쌓인 피멘토 치즈 샌드위치. 산산히 조각난 기억들 사이에 자리잡은 건 차안에 감돌던 음식의 미묘하게 유쾌하지 않은 향과 목에 낀 먼지들과 웅웅거리는 엔진 소리이기도 했다. 담배는 눈치껏 허용되고 대화는 으레 단절되곤 하던 넓지도 좁지도 않았던 시트에 뼈 없는 연체동물마냥 엉덩이를 한참 부비고 있자면 올라오던 꼬리뼈의 통증이기도 했고, 햇볕을 받아 그 색이 어지간히도 옅어보이던 그 늙은이의 죽은 물고기 같이 오싹한 눈과 깊은 주름살도 빼놓지 말아야겠지. 길 위에서 내려온 그 뒤에 정말로 제시는 마이크 어먼트라우트와의 기억들을 곱씹었다. 결국 알래스카에 온 건 그 혼자였다. 춥고 고요한 것이 참 그저 그런 곳.


틈들이 있었다. 그리 길지는 못한 시간 중에 틈들이 있었다. 그 틈들은 워낙에 얕고 좁고 짧아 의미있는 뭔가는 스며들지 않았다만 그래도 틈은 틈이었어서, 심지어 그맘때의 제시는 마이크가 조금 웃는 걸 봤다는 착각까지 했었다. 방금 웃었잖아요. 내가? 실상 누구든 웃을 만한 부분이라곤 전혀 없었던 대화는 언제나 오가지 못하고 어중간히 단절되었다가 제풀에 지친 그가 투덜거리고. 대충 그런 식으로 이어질 기미 없이 띄엄띄엄. 긴 로드 트립에 혼자 떠들기에도 지쳐 차창에 고개를 기댔다 깜빡 잠에 들고. 한낮의 기억나지 않는 백일몽에 눈물을 흘리며 눈을 뜨면 차는 멈춰 있었고 마이크는 무신경하게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앉아 있었다. 옆에서 사람이 우는 것 따위의 일엔 그 어떤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모습으로 그렇게. 그래도 그게 틈이었다. 담배 연기는 차창을 열고 달리면 맥없이 흩어졌다. 마이크의 귀는 위쪽이 조금 갉아먹힌 모양새로 아물었다. 제시는 손가락 사이에 열쇠들을 끼는 짓은 그만두었다. 늦은 밤의 손님 없는 다이너에서는 같은 메뉴를 시켰다. 그렇게 되고부터는 마이크가 처음 밀어 준 접시의 음식들이 무슨 맛이었는지 영영 기억나지 않았다. 라디오 틀면 안 돼요? 마이크는 고개를 내저었다. 조용한 게 좋아. 조용함 속에 무엇이 끼어드는지 제시는 말하지 못했다. 아마 그런 말은 그 틈으로 지나가기엔 너무 큰 덩어리였을 것이다. 쉽게 삼켜내지 못하고 목에 막히는 종류의 것들이 늘 그렇듯. 그게 전부였던 어떤 나날들을 제시는 랩에 쌓인 피멘토 치즈 샌드위치를 하나 받아들고 깨작깨작 베어물어 허무와 같이 삼켜버렸다. 날 지루하게 만들어 죽이려는 게 정말 아니라고요? 마이크는 그 말에 정말 웃었던 걸까. 조금 웃을 만큼은 그를 혐오하지 않게 된 걸까. 제시는 절대 알지 못할 종류의 것이었다. 마이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거잖아요. 실상 제시가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란 이런 것들뿐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매듭지어지는 일들.  모든 틈은 언제나 그에게 너무나 좁고 그나마도 금새 메워져버렸다. 제시에게는 늘 그렇게만 느껴졌다.

 

또 다른 기억 중 가장 직전의 것들 중에서. 마이크가 깨어나기 전 사막을 걸어가 찾아간 허허벌판 위 텐트 안 병실은 삭막하기 이루 말할 것이 없어 결국 제시는 뜬 눈으로 그를 지켜보기도 하였다. 그라도 없으면 아무도 없는 그 저녁에 지켜볼 것이라곤 창백한 낯의 늙은이 뿐이었는데도. 얼른 일어나라던지 하는 간질거리는 말 하나 없이 마이크가 그토록 좋아하던 침묵 속에서, 끼어드는 고독에 묻히지 않으려 제시는 벌벌 떨었다. 오랜만에 손을 떨며 담배를 네 개피쯤 피워댈 즈음 일어난 마이크가 한 말은 담배 좀 끄라는 것이었고, 제시는 담배를 껐다. 당신이 죽는 줄 알았잖아요. 마이크는 대답 대신 인상이나 더 써 보였다. 침묵 속에서 제시는 떨리는 손을 시트 위에 대충 올려두고. 그냥 올려둔 것도 아니고 딴에는 두 손을 모아 기도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마이크는 힘없이 그것을 보다 웃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떨면서 기도를 하려는 꼬라지가 웃겨서, 뭔 기도를 할련지도 웃겨서. 씨발, 왜 웃어요? 나는 당신 걱정을 했는데. 제시의 손 위에 차갑고 딱딱한 제 손을 겹쳐올리며 마이크는 짧은 기도문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아무거나 짧고 끝이 아멘으로 끝나는 그런 것을. 멍청이라도 외울 수 있을 거다, 꼬맹아. 제시는 보란듯이 비아냥거렸다. 그 멍청이가 댁 뒤를 챙겼는데 말이지.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그는 마지막에 기도를 했을까? 아마 아닐 거라고 더 이상 제시가 아닌 제시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