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Dettlaff/Regis)Imagination

Rybs 2021. 1. 6. 00:27

 

감(@c16421204)님 커미션으로 글 작업하였습니다.

 

 

주변에 누군가 없을 때 더 잘할 수 있어.

그렇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춤에 어떤 가치가 있겠어?


에미엘 레지스 로헬렉 테레지에프-고드프로이는 눈 앞의 남자가 빈 드레스 소매를 쥐고 제멋대로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시작부터 짚어나가야겠지. 나는 아직도 인간들이 왜 이런 동작들을 아름답다고 여기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그래, 이를테면 이렇게 팔을 쭉 뻗었다가, 굽히고, 발은 이렇게 움직이는 등의 행동들에는 어떤 의미며 가치며 뜻이 있나. 남자가 움직이는 족족 그가 쥐고 있는 옷자락은 부드럽게 나풀거리며 그의 동작에 맞춰 그와 함께 움직였다. 내가 보기엔 너의 서툰 실력 탓에 그래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네가 그들에게 맞춰주려는 모습을 보는 건 나를 기쁘게 하는군. 디틀라프의 미간은 그 말에 약간 좁혀지고야 말았으나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는 레지스의 말이 언제나 맞다는 점에 불평의 말은 묻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곧 레지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 것이다. 네겐 선생이 필요해, 어디서 주워온건지도 모를 꼬질거리는 천 쪼가리가 아니고...디틀라프 반 데르 에레테인은 그와 자신이 그런 적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갸리샴의 이름 하에 묶인 두 사람은 그 늦여름 투생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묘지의 공터에서 인간들이 으레 하는 그 이해할 수 없이 복잡하고도 가치며 의미는 영 없어 뵈는 행위를, 그러니까 춤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오래도록, 밤과 반의 낮이 지나는 시간 내내 추며 순전히 재미 삼아 어울렸던 적도 있는 것이다. 좋은 시절이었다-고 그는 회상하였다. 낯설고 제 자리 없던 세계에서나마 그가 향유할 것이 있음과 이를 같이 할 친구와 함께했다는 것은 그 기억을 소중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너는 언제나 인간들에게 호의적이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듯 보여, 에미엘. 그래, 나는 그런 편이지. 디틀라프, 네게 이해를 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맘을 먹었다면 진지하게 임해주길 바라고 있어. 그 드레스와 달리 나는 발이 있으니 말이야. 디틀라프는 그때 레지스가 준 나방 브로치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퍽 반짝인다고 생각했고, 그러니까 그 브로치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빛이 들면 반짝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그러니까 그것, 꼭 밤의 피조물들 역시 낮의 햇살 아래에서도 때로는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빛남을 말해주듯이 반짝였는데...


지금 그 생각을 하는 이유는 뭐지, 디틀라프?


디틀라프 반 데르 에레테인은 그 공터에서 붉은 사과의 맛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친구에게 말했다. 한 인간이 가진 여러 개의 사과들 중 가장 붉게 잘 익은 것을 받았노라고. 생각 없이 나무에서 무작위로 딴 다른 것들과는 달리 혀에 짙게 단맛을 새기고 끝에 가서는 산미가 느껴졌던 것이며 그제야 붉은색일수록 그런 맛이 난다는 걸 알아차렸던 계기가 된 사과 한 알을, 그에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며 내밀지 않은 사람의 손 따위의 것들을 말하며 그는 레지스의 손을 움켜쥐고 들었다가, 내리고, 발을 옮겼다. 우리는 여행자들을 신의 굴뚝새라고 부릅니다. 그 인간이 그렇게 말하며 사과를 내밀었다는 것이 중요해. 그래, 듣고 있어. 디틀라프, 내 팔을 완전히 꺾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좀 더 부드럽게 날 다뤄 줘. 굴뚝새? 예, 안주하는 우리들의 삶을 대신하여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이들이니까요. 세상엔 그런 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는데, 이 세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레지스는 그렇게 말하는 그늘 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난 그 가장 붉은 것을 심과 씨앗 몇 개 만을 남겨놓고 껍질까지 먹어치웠어, 두 번째로 붉은 사과 역시 나의 몫이었고... 후에 다시 찾아갔을 때 잠시 앉아 사과를 얻어먹었던 그 장소는 폐허가 되어 있었는데, 폐허에도 사과나무는 남아 붉은 열매를 가지 가득 드리우고 있었음에도 그가 그것을 따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왜? 평소의 그 답지 않게 평화롭다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차분히 이어지고 밋밋하게 끝맺어진 디틀라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레지스의 물음은 그러하였다.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 옅게 어린 감상적인 분위기는 디틀라프로 하여금 어떤 것이고 말해도 될 거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며, 그는 그 충동에 저항하지 않고 대답하였다. 목 안쪽이 꽉 막힌 것처럼 아무것도 넘어가지 못하는 기분에 가득 찼을 뿐이야. 오, 디틀라프. 그렇게 그때 네 목을 막은 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너는 언제나 모른 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슬픔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란 것을 너도 언젠간 알게 될 테지. 그때 디틀라프는 대답 대신 그저 레지스의 발을 일부러 힘주어 꾹, 꾹 밟았을 뿐이다. 그 당시에도, 이후에도 그런 말을 그에게 나눈 것을 영영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엔 그의 말을 어떻게든 반박하고 싶어 하는 듯이. 그래서 정말 굳이 지금에 와 그때의 생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 봐, 내 친우여. 그의 목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를 진정시키는 힘이 어려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꼭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때의 생각을 한 것이지. 디틀라프, 너는 지금에 와서도, 언제나 모른 체하고 있어. 그러나 레지스는 그때처럼 그의 곁에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물과 절규, 비명과 공포의 신음 등등은 그들에게도 전혀 음악이 되지 않았다. 동작 사이마다 존재하던 내밀하고 달콤했던 말이나, 시선들 역시 이 순간엔 존재하지 않았다. 눈이 서로를 향했을지는 모르나 오고 가는 것은 한때 오고 가던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다르기만 하였다. 대화 끝에 내밀어지는 손은 칼처럼 긴 손톱이 세워져 있었다. 결국 분노와 슬픔과 배신으로 일그러진 얼굴들은 그 겉껍질의 형상 때문이 아니라 오직 짙게 어린 그러한 감정들로 인해 추악하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인간들의 춤을 이해하지 못하던 뱀파이어는 웃었다. 우리가 꼭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아서, 에미엘.


에미엘 레지스 로헬렉 테레지에프-고드프로이는 눈 앞의 남자가 거꾸러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의 곁에 서지 않은 채였다. 인간들은 금세 꺼지는 불꽃이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성가신 촛불이지만, 밤의 짐승들 눈에 어떤 불빛은 아무리 작아도 너무나 매혹적임을, 네게 가르쳐줬어야 했을지도 몰라. 그러나 너는 가르쳐주지 않았어. 그래, 나는 가르쳐주지 않았어. 어떤 것은 가르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에. 어떻게 발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가르칠 수 없듯이. 나방에게 불에 뛰어들지 말라 가르칠 수 있겠나, 디틀라프?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박히기라도 한 듯 쓰러진 남자의 고개는 들리지 않았으며 그 몸뚱이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주변의 다른 살아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와인처럼 붉은 피와 비탄에 잠긴 흐느낌일 뿐이었다. 너는 가르쳐주지 않았어. 레지스는 그렇게 그를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끝까지 그의 곁에 서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