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bs 2021. 6. 12. 21:54

새벽이 다가온다고 표현하는 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불길이 일어나고, 사그라들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종종 마른 잎과 잔가지 등을 불 속에 던져 넣었고 불길은 그것을 집어삼키고 한동안 힘차게 일렁이며 따뜻하고 훈훈한 감이 드는 빛을 흘려보냈다. 빛은 창백한 우리의 얼굴을 한결 좋아보이게 만들었고 추위에 약한 그의 몸을 데우는 연료가 되었으며, 서로의 낯을 확인할 수 있도록 주변을 밝혔고, 그리고, 그리고...다가온다는 건 무언가가 끝난다는 뜻이던가? 새벽이 다가오면 밤이 끝나지. 그래, 그렇겠네. 그는 다시금 손 가득 마른 낙엽을 쥐고 불 위에서 손을 완전히 폈다. 더 던져넣을 것이 없어질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이 눈에 보였다. 게롤트,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밤이 곧 끝나면 따뜻한 해가 뜰 거란 뜻이고-라고 말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근방엔 온통 재와 얼음 뿐이었으므로 더 태울 무언가를 모아올 수도 없었다. 그럼 네 몸은 금방 따뜻해질거야. 마치 막 달리고 난 로취의 등처럼. 맨손으로 땅을 파헤쳐서, 얼어붙은 뿌리나마 불에 던져넣는다면, 한 사람분의 몸이 식는 것이 느려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새벽은 시간이 가는 대로 틀림없이 다가올테지만 불은 너무도 불안정해서, 바짝 마른 연료를 금새 집어삼키고 불길은 곧 사그라들고는 했다. 그것이 더 태울 것이 없어지는 순간 힘없이 바람에 나부끼다 꺼지는 것을 우리 둘 모두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이 너무도 경각에 달려 있기만 한 기분이 차오르거든 침묵을 깨는 네 목소리가-회복이 느려, 레지스. 게롤트는 불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앉은 상대의 가슴에 뚫린 구멍이 지나치게 느리게 메워지는 것을 지켜보며 말했다. 오, 괜찮아질거야. 가슴의 구멍에서는 끈적끈적하게 말라붙어가는 피가 느리게 떨어졌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더라? 레지스는 그를 보며 웃는다. 이를 드러내지 않고.


방금 네가 말한 표현이 이상하다고.
그래, 그거 말인데...들어봐. 다들 이런 식으로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


레지스는 그를 들쳐매고 걷는다. 동이 트고 난 뒤의 길은 한결 찾아가기가 편했고, 햇빛 덕분에 얼어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꽤나 아슬아슬했지? 그래, 다리에 감각이 없는 것 같다니까. 탕약의 부작용일테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레지스는 화살이 뚫고 지나간 그의 양 무릎이 곪고 달아오르는 향을 어렴풋히 맡는다. 열기가 몰려 뜨끈하고 순조롭게 부패해가는 살점의 향을 무시하려 한다. 새로히 흐르는 피의 향은 느껴지지 않음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며. 또한 힘없이 흔들리는 그를 단단히 고쳐 업으며 레지스는 대꾸한다. 가까운 마을에 도착하거든 방을 잡고 네 몸을 좀 살펴보자고. 지금 같아서는 빈대가 득시글한 침대라도 한번 누우면 사흘 밤낮을 깨지않고 잘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오고, 웃고, 웃는다. 레지스, 뱀파이어도 손이 곱고 추위에 얼어붙던가? 그럴리가 있나.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질문이 발화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게끔 굼뜨다. 그는 걷는 중 종종 마른 약초 뭉치를 코 밑에 들이댄다. 식욕을 저하시키고 각성 효과를 주는 향초들...레지스, 말수가 줄었군. 생각에 잠겨 있어서 그랬네. 투생 생각을 하고 있었어. 네 농장 말이지. 결국 제대로 가본 적 한번도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거기에 정착해서 여생을 보낼거란 말을 했었지 않았어? 그래도 괜찮았을거야. 들어서는 길은 돌로 포장이 되어있고 마굿간엔 열여섯 마리의 말이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곳. 적당히 거창하고 충분히 소박하잖아. 공기에서는 포도주와 정향 냄새가 감돌고 식탁엔 강에서 막 잡아올린 송어가 올라오고는 할 그런 곳. 그래,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곳이니까. 네 집이 있는 곳. 게롤트는 고개를 느리게 들었다 등에 다시금 푹 박는다. 그 얕은 몸부림은 마지막의 징조같기도 하고-그러니까, 불길이 꺼지기 전 나부끼는 것처럼. 그는 말을 돌린다. 그의 집은 장소보다는 언제나 인물에 엮여있고는 했다. 라일락과 구스베리 향이 나는 어떤 방, 눈이 영영 녹지 않을것만 같은 요새 안의 망루 구석, 묘지 안쪽의 아늑한 서재며 하는 것들도 모조리 그가 사랑하는 이들과 엮여서 떼놓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괜찮아? 내 걱정을 다 해주고, 위쳐. 나는 뱀파이어야. 그의 손은 더듬더듬 가슴께를 향한다. 뭉클하게 잡히는 살점 가운데에 덜 미장된 벽같은 부분이 느껴지면 그는 낮게 한숨을 쉰다. 그들이 뭔갈 말뚝에 발랐어. 낫는 것이 느리군. 레지스는 일순간, 부주의하게도 말할 뻔한다. 네 걱정을 해야 한다고. 너는 곧 꺼질 불꽃과 같은 상태여서...인간은 짧게 살고 쉽게 죽는다. 돌연변이라도. 그들은 다가오는 새벽까지 버티지 못하는 작은 불길이다. 긴 밤에 곁을 약간 밝히고 몸을 덥히는, 존재가 위안이 되는 존재들. 레지스는 피곤과 고통과 추위를 무디게나마 느끼고 만다. 그것들은 느리게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장 최악은 아니다.


레지스, 또 생각 중이야?
저기 마을이 보여, 게롤트. 다행히도.


그는 안도한다. 최악을 피해갈 수 있게 된 것에 그는 그의 신에게 약간의 공을 돌려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