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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바다 그러니 뉴튼이 그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단 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도 그런 거짓말이 없게 너무도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고 얕은 물결 휩쓸려 지나가면 다음 거짓말이 다시 밀려들어오기 전에 젖은 진실을 드러내곤 하는 그런 거짓말이었다는 것인데 허먼에게는 이도저도 세상의 종말을 막는 것에 비한다면 뭐든 그리 중요한 일이 전혀 아니었기에 한동안은 그것이 얼마나 얄팍하든 그는 정말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는 늘상 애정이며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대도 마치 아무렇지 않은 양 그 자신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은 농담 취급하는 뉴튼 때문이었기도, 잠시 멈출 기미조차 없이 야속하게 끝을 향해 나아가는 전쟁 시계의 바늘 때문이었기도, 비단 그렇게 얄팍한 뉴튼에게 우월감이든 동정심이든 동질감이든. 그런 것을 느낄.. 2020. 3. 5.
프로포즈(上) -돈이 목적이에요? -뭐? 아냐. 그러니까, 사실 유서프는 분명 오늘 하루를 아주 상쾌하게 시작했다. 그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섰고, 평소같으면 지렁이마냥 기어다닐 전철이 무슨 일인지 정시에 제대로 도착했고, 며칠 전에 새로 산 신발은 그에게 매우 잘 어울렸을 뿐 아니라 발볼이 넓어 아주 편했으며, 사무실-겸 창고-뭐라고 부르던 그가 일하러 가는 중에 들린 스타벅스에선 무슨 일로 가게가 한산한지 커피 주문이 밀리지 않아 금방 휘핑이 어마무지하게 올라간 헤이즐넛 라떼를 받아 마실 수도 있었다. 모든 게 착착 이루어지는군. 굿 유서프. 아주 굿이야. 스스로를 칭찬하며 그는 매우 행복하게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다른 팀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코브였다. 아, 코브. .. 2019. 11. 14.
(GOT)Je te laisserai des mots 잠을 잘 수 없는 밤이 찾아오면 나는 당신을 보러 와야만 해요. 내가 잘 해냈나요, 피터? 이상하게도 불행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지켜야 할 무언가를 숨기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요, 베일리쉬 경. 결국 잃게 될 것을 어느 순간엔 깨닫게 되지만, 어떻게든 놓을 수가 없는 무언가들. 계속되는 고통, 희생, 너무나 큰 상실. 마지막까지 그것 하나를 지키려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우리는 때로 그들에게 애원하지. 이것만은 남겨주세요, 제발, 제발. 그리고 가끔은 그것들을 지키려 외려 멀리해요. 적들에게 마치 그 소중한 것들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믿게 하려고, 그렇게 믿게 만들어야만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한 행동들이 그것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되리라 믿으며,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으려고 함부.. 2019. 11. 6.
My love was like a rain - 그러니까 제 말은, 분명 이 우주에도 변두리라는 게 존재하겠지요. 끝없이 팽창하는 공간 그 어딘가에 말예요, 우리 삶을 위탁하는 시간은 그저 찰나에 불과하여 어쩌면 가장자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 잠시 머물 수도 있을 것도 같았어요. 이런, 벽에 기대세요, 피가 멈춘 줄 알았는데. 당신 상처가 다시 터진 모양이에요. 기대세요. 돌아갈 곳은 없어요, 크레닉. 기억하시죠, 우리는 제국에게 배신당한 도주자들이에요. 스카리프는 사라졌어요. 플래닛 킬러가 거길 날려버렸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말했던 걸 기억하시죠? 이제 제가 상처를 살필 수 있게 해주세요. 네, 그렇게, 버둥대지 마시고, 일단 옷을 좀 자를게요. 총상이라고요, 네,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럼요, 갤런 어소의 딸이 당신을 쐈다고. 죽은 줄만 알았는.. 2019. 11. 3.